사실상 산문에 가까운 글이거나 아주 개인적으로 기록하는 비평에 가까운 글이다. 누군가를 비방하려고 남기는 것은 절대 아니며, 근래에 마음을 어지럽히는 주제라서 두서가 없을 수 있다.
최근 함께하게 된 디자이너와 오전에 짤막한 대화를 나눴다. 그는 나에게 본인의 이력과 좋아하는 디자인 취향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현재 함께 만들고 있는 제품의 디자인 스타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어찌 보면 회사에서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 였지만, 대화 말미쯤에 나는 그에게 실망했다.
* 오히려 평소보다 더 건설적인 내용을 담은
그는 언제나 제품에 본인 취향인 디자인 스타일을 투영했다고 했다. 거의 대부분을 초기 멤버로 일했던 그의 이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는 현재 회사의 제품 디자인 스타일은 본인이 선호하는 또는 처음부터 만든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디자이너로서 기여하기 어렵다고 했다. 알고 보니 디자이너로서 기여하기 어려우니 PM으로 전환하고 싶다는 일종의 선언을 하기 위한 자리였고 어쩌면 함께 업무를 하게 될 나에게 먼저 알려줌으로써 배려하려는 의도였을 수 있다.
위 이유를 포함해서 다양한 고민이 물론 있었겠지만, '제품의 디자인 스타일이 본인 취향과 맞지 않기 때문에'라는 이유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팀에는 20명에 가까운 디자이너가 있었으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제품의 정해진 컬러, 사이즈, 타이포그래피 등 형태적인 인터페이스 그래픽을 일관성 있게 지키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었다. 반면 나는 그가 합류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팀에 적응하고 디자인 스타일을 맞추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잘 모르는 상태였다.
나는 무엇에 실망했고,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을까. 내가 여러 곳의 회사 생활을 하며 제품을 만들 때 단 한 번도 고민해 보지 않은 문제라 당황해서 였을까? 단순히 내가 현재 제품의 디자인 스타일이 형성되는데 일부 책임*을 갖고 있어서 였을까? 또는 함께 제품을 만드는 동료로서 다른 이들의 노력을 생각하지 않고 개인의 취향, 기호와 맞지 않으니 다른 역할을 하겠다는 무책임에 실망했을까.
* 나는 제품의 디자인 시스템을 설계한 디자이너들 중 한 명이고 가장 오랫동안 오너십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다. 어쩌면 디자인 시스템이 제품의 형태적인 취향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쳐서, 객관적으로 고민을 받아들이지 않고 속 좁은 감정을 느꼈을 수 있다.
언젠가 이런 일도 있었다. 퇴근하기 직전에 스레드에 멘션 되었다. 장문의 메시지로 구성된 스레드의 요지는 "Select의 동작이 어색하니 문제다. 문제를 고쳐달라"는 내용이었다. 함께 첨부된 영상을 확인해 보니 우리의 귀여운 Select는 열심히 주어진 입력에 따라서 우리가 의도한 동작을 수행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이러한 이유, 저런 이유로 의도한 대로 동작하고 있다는 답변을 기계처럼 작성했겠지만, 내 키보드에 누가 음료라도 쏟은 것 마냥 선뜻 손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나를 멈추고 어지럽게 만든 맥락은 "어색하니 문제다." 딱 하나였다. 문제의 스레드에서는 사용성, 사용자의 피드백, 레퍼런스 등 어떤 그 어떤 근거 없이 어색하다고 느끼는 이유와 어떤 방식으로 수정되기를 바란다는 맥락의 글자들이 나열되어 있다.
다시 한번 더 메시지로 물어봐도 되돌아오는 건 '어색하다'는 답장이었다. 무언가 버그였다면 괜찮았겠지만, 개인의 예상대로 동작하지 않는다는 게 분별없이 문제로 치환되는데 갑작스러운* 부아가 치밀었다. 답변을 하기 위해 엔지니어들과 사용처에서 원하는 동작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논의했고, 사용할 수 있는 코드 인터페이스 안내와 함께 해당 동작을 구성하기 위해서 참고했던 꽤 유명한 제품의 Select 동작을 녹화한 뒤 장문의 메시지를 작성했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 이런 종류의 이슈들이 너무 자주 인입되는 상황에 대한 피로도 한몫했다.
차라리 나름의 논리와 의견이 담긴 메시지를 주고받았다면 생산적인 고민의 연결로 위안이 되었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납득하니 현재 Select의 동작을 유지하겠다는 짤막한 답장을 집 지하 주차장에서 확인했다.
근래에 동료 중 한 명은 시안을 공유하는 회의에서 '빨간색 글씨가 좋으니 빨간색으로 변경해달라'는 주장을 피드백으로 받았다고 했다. 디자이너로서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회사에 소속되어 무언가를 디자인하는 일은 보통 이런 식이다.
위에 나열된 두 단락은 언뜻 달라 보이지만 비슷하다. 취향 또는 개인의 기호와 다른 것은 문제로 느껴지게 된다. 너무 성급한 일반화 같지만 취향과 다르면 어색하게 느껴지고 어색함은 문제로 발전한다. 두 사례는 단순히 직무와 UI의 동작으로 맥락이 다른 것뿐이다. 첫 번째 사례는 취향이 달라 기여하기 어려우니 다른 직무 전환으로 문제를 해결했으며, 두 번째 사례는 예상(취향)과 달라 어색하니 문제를 고쳐달라고 이야기했다.
취향에는 논리가 없으며, 좋고 나쁨에 객관적인 기준도 없다. 아주 좁게 시장 경제 안에서 유행이라는 엇비슷한 게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휘발되어버린다. 이제 점점 논리도 근거도 없이 개인의 취향 차이로 발생하는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피로와 진절머리를 느낀다.
지금 만들고 있는 제품은 운이 좋게 내 취향이 반영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나는 동료 디자이너들에게 생산자이지만, 이전까지는 나는 언제나 사용자였다. 과거 다른 회사 속 나는 취향과 맞지 않는 제품을 디자인하느라 힘들었을까? 나와 함께 지금 제품을 만들고 있는 동료들은 내 취향이 반영된 디자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데 불행을 느끼고 있을까?
좋은 것을 만들어낸 것에 대한 확신의 부족함, 너무 많이 쌓인 피로감으로 지나치게 자기 파괴적인 고민인지도 모르겠다.